프레닐의 감정은 단순한 애정이라기보다는,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에 대한 집착에 더 가까웠다. 프레이는 살아있지도 않았고, 자신을 이타적인 영웅(도구)으로만 보는 남들과 같은 이도 아니었으며,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도 괜찮은 존재였다.
프레닐은 자기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현실의 파도에 휩쓸리며 자신을 향한 혐오와 부정적인 감정만을 키워갔다. 천성과 맞지 않는 전투에 내몰리면 내몰릴수록, 자신의 위치가 적합한지 의문이 들면 들수록 그의 부정적인 감정은 더욱 깊어만 갔다. 전장에서의 망설임이 동료의 죽음으로 이어질까 두려웠기에, 그는 의도적으로 생명을 경시하는 법을 배웠다. 끊임없이 마물 퇴치와 전투에 뛰어들며 죽음에 둔감해지려 했고, 본능적인 거부감을 억누르며 생명을 앗아가는 일에 익숙해지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살아있는 것 자체를 점점 꺼리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다는 갈망도 커져갔다.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고 보듬어줄 이가 필요했다. 아니면 차라리 모든 것을 잊게 해줄 강렬한 감각—쾌락이든, 고통이든—이라도 원했다. 완전한 백지가 되고 싶었고,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던 평범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하지만 프레닐은 이런 마음을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세상은 불안정하고 위태로웠으며, 끊임없이 누군가의 힘을 필요로 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일 만큼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는 쌓여가는 감정들을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잊으려 애썼다.
모험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신생 에오르제아의 사건들을 겪기 전까지는 비교적 밝은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내성적이지만 이타적인, 전형적인 어린 영웅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희망의 등불 사건’을 계기로 가까운 이들을 잃고, 누명을 쓰고, 한 국가의 적이 되는 일을 겪으며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과거의 그는 "내 힘을 모두를 위해 쓰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돕고 싶다."라는 순수한 마음을 가졌지만, 이제 그의 행동은 모래의 집에서 죽은 동료들을 향한 속죄, 의무감, 그리고 또다시 미움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자신이 빠져나올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고, 민필리아의 "당신이 있으면 새벽은 언제고 이어질 수 있어요."라는 말조차도 희망의 연속보다는 고통의 연속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모두가 죽어도 미래를 위해 혼자서 나아가야 하는 힘… 그런 건 원한 적 없어…’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는 하는 그였지만, 그는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슈가르드로 도망치는 길에, 그의 정신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고통, 배신감, 슬픔, 허무. 이 막막한 현실 속에서 그는 또다시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남겨진 동료들은 괜찮을까? 가족들은? 이젠 영영 울다하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방어적으로 변한 그는 ‘왕녀 시해 사건’의 억울한 누명을 쓰면서 더욱 의심이 많아졌다. 한 국가의 증오를 뒤집어쓰는 것이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직접 경험한 그는 이슈가르드에 최대한 호의적으로 굴며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며 얼굴을 알리고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신뢰를 쌓고자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겁에 질린 성도 시민을 만나 암흑기사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국가에서 이단 문제를 해결하면 큰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라는 계산적인 생각으로 구름안개 거리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이미 죽어 있는 기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 보는 남자의 주검이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이 자신과 닮았다고 느껴졌다. 이내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평판에 좋지 않다고 판단한 그는 떠나려 했으나, 찰나의 순간 시체의 품에서 떨어진 소울 크리스탈을 발견한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것을 주워 확인하려는 순간,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자신을 아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레닐."
처음 보는 기사, 프레이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위화감이 엄습했다. 갓 도착한 이방인을, 처음 보는 죽은 기사가 부르고 있다. 그의 정체를 알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은 정보를 캐내기 위해 프레이의 동행을 받아들였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다니!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기에 프레닐은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요마? 흑마술?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가 살아난 방법을 알아낸다면… 어쩌면 울다하에서의 일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프레닐은 확신했다.
프레이는 정말로 죽은 사람이었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움직이는건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닐은 프레이에게 관계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그의 맨몸을 보고 싶었다. 만약 거절한다면 "네 힘이고 크리스탈이고 뭐고 전부 그만두고 너를 기사단에 신고하겠다." 고 협박할 생각이었다. 결국 프레이는 얼굴을 보지 않고 불을 끄는 조건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그들의 관계는 기묘했다. 동료라기엔 너무 서늘했고, 단순한 이해관계라기엔 서로에게 깊숙이 얽혀 있었다. 프레닐은 프레이를 영웅의 모습으로 대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 여겼고, 그래서 더욱 거칠게 대했다. 동시에 의문스러운 프레이의 정체나 행동들에 대해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 묘한 안정감을 느꼈고, 어떠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경계와 의심, 계산적으로 시작한 관계는 어느새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가끔씩 그에게 간식을 사다 주기도 했고, 프레이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때는 ‘혹시 그가 나에게 감정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하곤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이 왔다. 프레이는 프레닐에게 간곡히 본인과 떠나기를 청했고, 프레닐은 수락한다.
프레닐은 프레이와 함께 떠나기로 결심했다. 새벽의 혈맹에게 미안했지만, 말하면 분명 붙잡힐 것이기에 조용히 짐을 챙겼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영웅이란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몰라.’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중, 기병들에게 붙잡혔다. 익숙한 요청이었다. 도와달라. 당연하지만 거절했다. 프레이가 과장하는 사람이 아닌 것은 알지만, 확실히 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병들은 끈질기게 그를 붙잡았고, 프레닐은 고민했다. 무시하고 갈 수도 있었지만, 그대로 떨쳐버리면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따라갔고, 예상보다 일이 커졌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급히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그리고 들려온 소식.
프레닐은 절망했다. 함께 도망치려 했던 상대는 이제 이슈가르드의 적이 되어 있었다. 기병들과 함께 온 이상, 프레이를 쓰러뜨려야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계속 외치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쓰러뜨리고 지금이라도 도망가자.’ 그러나 프레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없었다. 결국 전투가 시작되었다.
프레닐은 필사적으로 싸우며 "지금이라도 같이 가자. 어쩔 수 없었어."라고 외쳤다. 하지만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었다. 생존 욕구가 누구보다 강했던 그는 결국 승리했다. 그는 죽고싶지 않았다. 패배한 프레이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경고를 남겼다. "네가 방심하면, 내가 다시 나타날 거야." 그리고 스러졌다.
기병들은 프레닐에게 환호하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역겨운 말일 뿐이었다. ‘이 끔찍한 곳어서 도망칠 수 있었는데! 이건 다 너희 때문이야!’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이젠 떠날 길이 없었다. 그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영웅 행세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프레이의 시체를 묻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러나 결국 그는 참지 못했다. 시두르구와 미스트의 일을 해결해주던 중 프레이와 다시 마주한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